Devil's Advo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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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란건 말이죠. 있는 힘껏 꿈을 위해 뛰었는데, 그래서 이제 남은 힘도 없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기만 할때 그때야 비로소 절망할 자격이 주어지는 겁니다.
by Dissemb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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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나에게 적용해보니 나 역시 '지금은 플래시라는 기술로 그럭저럭 먹고살고 있지만, 시대가 변해서 이 기술이 필요 없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두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서 실천에 옮겼는데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첫 번째로 플래시라는 특정 기술이 아닌 나만의 '내공'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엔 플래시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플래시를 사용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플래시를 열심히 공부해 뛰어난 '플래시 개발자'가 되기보단, 디자인, 모션, 화면전환, 그리고 유저 인터랙션 등이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초점을 개발 언어에서 콘텐츠로 옮긴 것인데, 웹사이트의 디자인과 모션의 디테일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사용자가 어덯게 편하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을지, 메뉴 클릭 시 나오는 모션은 어떤 게 젱리 직관적인지 등을 더 연구했다. 거기엔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은 항상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한 가지 기술에만 의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듯이 플래시라는 기술 또한 언젠가 대체될 것이니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나만의 '내공'을 가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쌓인 내 실력은 후에 플래시 시장이 죽고 HTML5가 대세가 되었을 때도 내가 뒤처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두 번째로는 '크게 보고 눈앞의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연봉, 직급 등에 연연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승진을 위해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데 시간을 쓰지 말고,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실력을 쌓고 싶었다. 즉, '이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연봉을 많이 받자'가 목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성장한 모습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선 좁은 시야로 눈앞의 작은 것을 가지지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직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일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평소 시계나 반지 같은 손을 움직이는 데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는 하지 않고, 옷도 편하고 빨리 입을 수 있는 운동복을 즐겨 입는 이유이다.

-44~45p 내공, 성장



 그런 내가 본격적으로 해외취업을 준비한 계끼는 한국에선 더는 성장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였다. 대부분 회사에선 열심히 일하던 작업자의 시절을 지나 경력이 쌓이고 연봉이 올라가면 관리직으로 이동한다. 그 사람이 갖춘 전문성과 내공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보단, 높은 연봉의 관리자 한 명이 저렴한 연봉의 신입 인력 여러 명을 관리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회사 측에선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정점인 '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만큼 관리자로 승진하기보단 내 분야의 통달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든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있는 미국의 뉴스를 접할 때면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해외취업을 결심하고 준비한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뭔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였다. 70년대 미싱사였던 어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작업자로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좁은 우물이 아닌 큰 바다로 나가야 할 시기라고 느꼈다. 영어도 못하고 유학은커녕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나였지만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연말  29살의 겨울, 그렇게 해외취업을 위한 첫걸음으로 새로운 포트폴리오 제작에 들어갔다.

- 46p



 일이 많이 남았다면 좀 더 늦게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밤을 새우며 혹사할 정도의 일정은 주지 않는다. 클라이언트 역시 우리를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스케줄을 협의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 매우 급한 프로젝트여서 팀원들과 며칠을 밤새며 2주 안에 끝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잘 끝낸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클라이언트로부터 '역시 프로다'라는 반응을 기대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안된다더니 쪼으면 다 되네.'라는 반응이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우리가 잘해서 끝낸 게 아니라 '갑'인 본인이 '을'인 우리를 잘 쪼아서 잘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밤을 세웠던 팀원들은 클라이언트의 독촉이 무서워서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금요일 퇴근시간에 일을 던져주며 월요일까지 보고하라거나 일이 잘못되면 뒤로 메일을 돌려서 모두 내 책임으로 만드는 등 한국에서 갑의 횡포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빛을 볼 것 같으면 여기저기서 피드백을 주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갑'으로서 본인이 참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숟가락을 얹는 것이다. 초반에 야심 차게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갈수록 산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우습게 보던 시선은 분명 고쳐야 할 점이다. 사람 간의 예의가 아닌 높은 계급을 향한 일방적인 예의를 강요하고 그것이 나아가 '갑과 을'의 문화, 또는 '네가 감히' 문화가 되는 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 123p 갑질




나의 작업 철학

 플래시 개발자에서 쉽게 HTML5 개발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에는 내가 가진 작업 철학이 큰 동무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나의 희망직업은 영화의 미니어처 등에 쓰이는 모형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때 내 재능에 대해 진지하게 스스로 반문을 해본 적이 있다. 모형을 만드는 장인이 되려면 처음부터 모형을 직접 빚어내고 완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실력은 이미 만들어진 모형을 사서 조립하고 색칠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취미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직업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그 분야의 진짜가 되기 위해선 본질이 되는 작업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발의 본질은 개발코드를 사용해 구조를 설계하고 움직임을 만드는 일이다. 코드에 대한 이해가 없이 툴(Tool)이나 라이브러리(Library)만을 사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시중에서 모형을 사다가 조립하고 색칠만 하는 취미 정도의 수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플래시는 누구나 모션을 만들 수 있도록 타임라인 기반의 오소링 툴(Authoring Tool)을 제공하고 있다. 이 툴을 이용하면 코드를 몰라도 손쉽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이것이 개발 코드에 서툰 디자이너에게도 플래시가 인기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많은 작업자가 플래시의 편리한 기능인 툴을 사용해 버튼의 움직임이나 세밀한 모션 등을 만들었다. 모두가 편리한 방법을 찾을 때 나는 어렵고 시간이 걸려도 개발 코드만을 이용해서 움직임을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의 특정 기능에 의지하지 말고 개발의 본질인 '코드'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사수나 멘토가 없었떤 것이 이런 부분에서 장점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가르쳐준 대로만 따라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방향으로 공부할 수 있었기 땜누이다. 그렇게 쌓인 '코드 애니메이션'의 노하우는 오소링 툴이 없는 HTML 작업에서도 쉽게 JavaScript를 이용해서 인터랙티브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라이브러리도 마찬가지 부분이다. 라이브러리는 '개발에 필요한 특정 기능을 미리 구현해둔 소스 파일'로, 잘 사용하면 개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코드에 대한 이해 없이 라이브러리에만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문제를 라이브러리를 사용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그때 본인의 실력에 대해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컬렉터(Collector)가 되기 쉽다. 컬렉터란, 실력을 쌓는 데 시간을 쓰기보단 라이브러리를 수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습관은 처음엔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된다.

 본질에 대한 나의 작업 철학은 구글에서도 빛을 발했다. 처음 구글에서 했던 작업은 더 나은 구글 웹사이트를 위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이었다. 보통은 프로토타입 작업을 위해 편리한 프로토타이핑 툴이나 다른 사람이 만들어둔 라이브러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툴이나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지 않고 네이티브 언어인 JavaScript 코드만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둔 코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디자인에 최적화된 코드를 만들어서 성능을 높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나의 작업 철학이 모바일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위한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원천이 되었다.

 툴이나 라이브러리는 분명 편리한 점이 많지만, 실질적인 코드에 대한 이해가 낮아지고, 툴에서 제공하는 한정된 기능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툴의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고 그것을 100%이해하고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툴이나 라이브러리도 결국에는 코드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어려워도 툴의 도움 없이 개발의 본질인 코드를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 132~134 철학





AND


글을 쓸 때,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는 것과 직접 종이에 펜으로 작성하는 것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전자의 경우 글을 쉽게 수정할 수 있다는 이 점이 있긴 하지만, 조금은 집중력이 흐트려지진 않을까?

AND


 저자는 인도인인데, 미국에서 유학 후 교수를 하는 사람이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조금은 조심스러워 하는것과 미국을 약간 찬양하는 태도가 있다.



 글 읽기, 특히 책을 읽는 독서는 지금도 진정한 지식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로 중 하나이다. 어떤 쟁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쟁점을 다룬 좋은 책을 읽는 것을 대신할 방법은 거의 없다. 이는 오래전부터 공인된 진리와도 같은 말이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어린아이에게는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만, 아이들이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중략) 내가 새로운 형태의 오락거리와 테크놀로지를 혐오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오히려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알려준다. 따라서 자식 세대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영민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교육제도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애써야지, 그런 문제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해서는 안 된다.

- 71~72p


 언젠가 나는 타임 워너스의 최고경영자, 제프 뷰커스에게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뷰커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팀워크!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해서 일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손잡고 이랗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 능력은 우리 삶에서 무척 중요한 기능이지만 교육은 여전히 일인극에 가깝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80p


 교양 교육의 장점을 격찬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십중 팔구 그는 "교양 교육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교양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장점은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글을 쓰려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삶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글을 명확하고 알기 쉽게, 또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써낼 수 있다면 그보다 소중한 능력은 없을 것이다.

- 87p


 신입생 동안 내내 나는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훈련을 나름대로 시작했다. 무척 힘들었다. 내 생각을 명확히 글로 써내려면 먼저 명확히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두 과정이 불가분하게 뒤얽혀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지만, 컬럼니스트 월터 리프먼도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요청받았을 때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으니깐요"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지지 않는가.

 현대 철학에서도 생각과 언어,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막연하게 생각한 후에 그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가, 아니면 먼저 언어로 생각하고 나중에 언어가 생각의 뼈대를 짜맞추는가? 내 경험을 근거로만 이 의문에 대해 대답하면 다음과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내 '생각'은 일반적으로 불분명한 관념들이 서로 연결된 채 뒤죽박죽 뒤섞인 상태이며, 곳곳에 메워야 할 커다란 구멍들이 있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구멍을 메우고 뒤죽박죽인 상태를 정리한다. 칼럼이나 시론의 경우, 초고는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의 표현이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에 논리적인 일관성이 있든 없든 간에, 또 확인된 사실로부터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되든 않든 간에 초고를 통해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여하튼 정치인이나 사업가, 변호사나 역사학자 혹은 소설가 등 당신이 어떤 일에 종사하더라도 글을 쓰려면 이런저런 선택을 하고 머릿속에 관념들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정돈해야 한다.

- 88~89p

명확한 생각 -> 글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노먼 어거스틴도 록히드 마틴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내가 경영자로서 마지막으로 운영한 기업은 직원수만도 약 18만 명이었고, 대부분이 대학 졸업자였다. 게다가 8만 명 정도는 엔지니어잉거나 자연과학자였다. 경영진까지 승진한 직원들에게서 확인되는 뚜렷한 공통점 하나를 꼽으라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명확히 표현해내는 능력이었다"라고 말했다.

- 90p


 교양 교육의 두 번째 장점은 우리에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예일-NUS의 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대학은 지적인 경험에서 반드시 필요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능력을 함양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 한다. 물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는 글쓰기도 포함되지만, 예컨대 과학실험을 언어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 심화되면, 우리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무턱대고 쏟아낸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충분히 성숙되지 않는 생각을 걸러낸 후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배열해서 외부 세계에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 91p


 혁신 전문가인 브루스 누스바움은 2005년 [비즈니스워크]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경제는 새로운 것, 즉 창조경제라 불리는 것에 의해 퇴색되고 있다. (...) 과거에는 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들, 예컨대 가격과 품질, 지식과 관련되어 좌뇌를 활용하는 분석적인 작업은 저임금의 숙련된 중국인과 인도인, 헝가리인과 체코인과 러시아인에게 식속하게 이전되고 있다. 반면에 새롭게 부상한 핵심 역량을 창의성이다. 요즘 첨단 기업들은 우뇌적 자질인 창의성을 활용해서 최고 수준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제 성장의 원동력은 수학과 과학만이 아니다.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이다"라고 주장했다.

 테크놀로지와 세계화가 일자리에 미친 영향을 가장 심도 있게 연구한 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산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는 곱셈처럼 명확히 부호화할 수 있는 것, 요컨대 속도와 결과, 정확성과 비용 효과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분야인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에 융통성과 판단 및 상식이 필요한 일, 예컨대 가정을 세우거나 벽장을 꾸미는 행위처럼 우리가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기능은 자동화하기가 가장 힘든 일로 입증되었다. 이런 일을 컴퓨터는 유치원생보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교육을 등한시해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컴퓨터의 힘을 빌려 작업하더라도, 또 앞으로는 거의 모든 작업에서 컴퓨터의 힘을 빌려야 하겠지만, 컴퓨터가 아직은 계산해내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이 어떤 일에서나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우터는 인력시장을 세 조각으로 구분한다. [패스트 컴퍼니]에 기고한 글에 아우터의 연구가 잘 요약되어 있다. 시장의 가장 밑바닥에는 버스를 운전하거나 음식을 만들고, 어린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서비스 직종, 즉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수시로 닥치기 때문에 대면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노동의 수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노동은 테크놀로지에 위탁하거나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층은 화이트칼라이지만 기계적인 일을 반복하는 직종들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정보처리, 서식 채우기, 진상 조사, 데이터 입력, 간단한 자료 분석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보험과 은행과 법률을 다루는 화이트칼라 직종도 중간층에 속하지만, 기계로 대체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글의 저자는 "시장의 최상층에는 모두가 원하는 직업이 있다. 어떤 직업일 것 같은가?"라고 묻고는 "미국 교육제도의 졸업생들이 잘 준비하고 있는 직업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 의사결정력, 설득력 있느 말솜씨와 경영능력이 요구되는 직업들이다."라며 아우터보다 훨씬 더 낙관적으로 대답한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앞으로 기계학습(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거라고 주장하지만, 복잡한 창의력과 정서지능 및 가치판단이 더해져야 하는 업무는 여전히 인간에 의해 행해질 거살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 101~104p


 예술사나 인류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서너 개의 언어와 문화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외국 땅에서 직접 일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게다가 미학적인 눈과, 어떤 문화의 표현 수단을 우리 문화에 맞게 해석하는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이런 능력들은 세계화된 오늘날의 시대에 거의 어떤 직업에서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훈련받은 학생들은 자연스레 상대와 사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연구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이런 식으로 훈련받은 학생은 다양한 종류의 지능을 개발한 덕분에 더욱 창의적이고 너그럽다.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의 어윈 브레이버먼 박사가 경험한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1998년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젊은 의대생을 가르치던 브레이버먼 박사는 학생들의 관찰력과 진단 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미래의 의사들을 미술관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예일 대학교 영국미술센터의 큐레이터였던 린다 프리들랜더의 도움을 받아, 100명의 레지던트를 위한 시각 훈련을 기획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그림들을 관찰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분석해서 작품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이 수업을 받은 후 학생들의 진단 능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 이후로 20여곳의 다른 의과대학이 브레이버먼의 훈련법을 받아들였다.

- 106~107p


 "미국과 싱가포르 모두 실력을 중시하는 국가이다. 미국이 능력 실력주의라면, 싱가포르는 시험 실력주의이다. 그런데 시험으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지적 능력이 있다. 창의력과 호기심, 모험심과 야망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에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뜻하더라도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라고 가르치는 문화가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으로부터 이런 문화를 배워야 한다."

- 113p



 세 국가는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현실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로는 세 국가 모두에서 업무 문화가 비계급적이고 성과주의라는 것이다. 둘째로는 세 국가 모두 '젊은' 국가처럼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운영된다. 셋째, 다른 세계의 관점과 장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사회라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끝으로 세 나라 국민이 모두 자의식이 강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자의식은 계량화될 수 있는 특징이다. PISA는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PISA의 전문용어로는 '자아개념'이라 일컬어지는 자신감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들도 묻는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수학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미국과 이스라엘 학생들은 수학 시험의 결과에서는 각가 27등과 30등을 차지했지만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스웨덴도 7위였지만 실제 시험 결과에서는 28위였다.

 (중략) 그런 자신감이 밑바닥에 있는 까닭에 그들은 연장자에게 도전하고, 기업을 과감히 창업하며, 주변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더라도 집요하게 계속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이 때로는 자기 기만의 위험을 무릎써야 하지만, 자신감이 기업가정신의 필수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에이미 추아와 제드 러벤펠드는 [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에서, 소수이지만 뛰어난 성과를 거둔 집단은 불안감과 자신감이 이상하게 결합된 특징을 띤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몰락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이스라엘이 존속을 끝없이 염려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며, 이런 불안감을 국민들의 허장성세와 짝지워 생각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성취도와 자신감의 뚜렷한 차이가 이해되는 듯하다.

- 115~117p


 많은 기업이 대학에서 운동을 겸한 학생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운동선수는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훈련하는 습관과 규율이 몸에 밴 사람이란걸 기업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삶에서 성공하기 바란다면, 성실히 공부하고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할 줄 알아야 한다.

- 126p


 이런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지금의 미국을 어떻게 만들려고 했을까? 토머스 에드솔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말했듯이 일류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의 74퍼센트가 소득 상위 25퍼센트에 속한 가정에서 자랐고 3퍼센트만이 소득 하위 25퍼센트 가정 출신인 나라를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면 어떻게 만들려고 했을까? 가장 뛰어난 학생들의 장래도 가정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소득 제1분위 가정 출신의 고득점 학생이, 비슷한 점수를 받았지만 소득 제4분위 가정 출신의 학생에 비해 학사 학위를 취득할 확률이 거의 2배에 달한다. 게다가 일류 대학의 입학 조건이 학교 성적, SAT 점수, 과외활동의 참여 등과 같이 순전히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소득과 상관관계가 있다. (시험성적보다 교외활동과 상관관계가 더 크다. 넉낙하지 않은 사람이 여름에 무보수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에드솔은 교육 전문가 앤서니 카너베일의 말을 인용해서 "교육제도가 특권의 대물림을 위한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 140~141p


 캘리포니아 출신의 정치운동가, 론 운즈는 2012년 격월간지 [아메리칸 콘서버티브]에 기고한 시론에서 재밌는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지난 20년 동안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의 지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성적도 뛰어났지만, 미국의 상위권 대학들이 아시아계 학생의 할당량을 전체 학생수의 약 16.5퍼센트로 유지해왔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자료였다. 합격자 수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추정치이지만 아이비리그의 두 입학 사정관에게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실질적으로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많은 입학생이 자신의 인종을 밝히지 않거나, 인종적으로 혼혈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격과 취미 같은 모호한 입학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버클리 등의 대학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전체 학생수의 거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수학, 컴퓨터,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의 분야에서 시행된 미국 올림피아드와 인텔 과학 영재 선발대회의 수상자 중에서 아시아계가 요즘에는 60퍼센트를 넘겼다.

- 144~145p



 나는 과거에 10년 동안 [뉴스위크]에서 근무했었다. [뉴스위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출판물 중 하나로, 한때 독자가 수천만 명, 매출이 수억 달러에 이르렀다. 인터넷이 꽃피기 시작했을 때 우리에게는 인터넷에는 없는 이점이 있고, 독자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특별한 기사를 원할 것이며, 잡지 사업이 전에도 어려움을 주기적으로 겪었듯이 인터넷이란 폭풍도 결국 이겨낼 거라고 생각했었다. 공교롭게도 [타임]이 후원한 토론회는 [뉴스위크]가 마지막 호를 발간했던 날에 열렸다. (그 이후에 [뉴스위크]의 종이판은 한정된 부수로 복간되었다.) 그날 나는 온라인 교육과 관련해서 청중들에게 [뉴스위크]의 운명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인터넷이 모든 산업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가고 있었다. 교육만이 인터넷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대비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 155p


 인상적인 일과표이지만, 브룩스는 일과표를 채운 모든 행위가 주로 이력서를 멋지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지 지적인 호기심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인격과 품성을 함양하는 행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결국 브룩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으며 시론을 끝맺었다.

 

 미국에서 능력의 사다리 꼭대기에는 남달리 똑똑하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성실하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면한 대학생 세대가 있다. 그들은 공부하고 무리짓는 걸 좋아한다. 따라서 열심히 조직을 만들고 조직에 가입한다. 그들은 책임감있고 안전을 중시하며 성숙하다. 반항하지도 않을뿐더러 반항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권위에 순종하고 권위를 동경한다. '소외'는 그들에게 거의 해당되지 않는 단어이다. 그들은 우주를 유익하고 질서있고 의미로 가득한 곳이라 생각한다. 다음 세대의 리더 계급이 키워지고 있는 학교에는 분노한 혁명가, 실의에 빠진 게으름뱅이, 음울한 냉소주의자는 없고 조직 순응적인 아이들만이 있다.

- 189~190p


 그러나 요즘의 불평은 과거의 반동적인 우려와 사뭇 다르다. 과거에는 젊은 세대가 지나치게 반항적이고 예의가 없다고 푸념해온 반면에, 요즘에는 젊은 세대가 반항적이지도 않고 예의가 없지도 않은 게 문제인 듯하다. 요즘 젊은인는 사회적 통념에 반발하지도 않는다. 자유주의적인 신념으로 앨런 블룸을 자극하는 젊은이도 없고,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울화통을 터뜨려놓을 만한 보수주의적 신념을 내세우는 젊은이도 없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젊은이들이 부르주아 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로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지나치게 부르주아적으로 행동한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많은 젊은이가 환경에 순응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좋은 직업을 구하려고 애쓰는 듯하다. 그 젊은이들이 캠퍼스를 떠나 종교적 의식을 공부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헤겔을 읽고 한두 번의 연좌 농성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그들의 내적 영혼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물론, 똑같은 평론가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대학생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언젠가 나에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평론가들은 다른 기준을 들이대며 우리가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글을 써댈 겁니다"라고 푸념했던 대학교 2학년 학생의 심정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 192~193p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고등교육연구소 보고서에서 가장 놀라운 결관느 요즘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쟁점과도 관계가 있다. '삶에서 의미 있는 철학의 개발'을 무척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신입생의 수가 1967년에는 86퍼센트에 달했지만 2013년에는 45퍼센트로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브룩스와 데레저위츠 등 많은 평론가가 요즘의 대학 캠퍼스라며 자세히 묘사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한 수치이다. 또한 이런 결과에 평론가들이 현재를 걱정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에 잠기는 듯하다.

 나는 그들의 향수를 이해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과거 세대처럼 큰 논쟁거리에도 흥분하지 않는 듯하다. 또 원대한 철학적 쟁점을 두고 연설을 하거나 논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니체나 마르크스 혹은 톨스토이에 대해 밤을 새며 언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요즘 시대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이 이런 모습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현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자랄 때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상반된 사상들이 세계 곳곳에서 다툼을 벌였다. 따라서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혹은 둘 사이의 절충점 등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사람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런 정치 사상들은 각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연령을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했다. 한편 이런 정치 사상들의 뿌리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고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82년은 20세기를 억눌렀던 이데올로기 전쟁의 마지막 순간과 우연히 일치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1981년에 정권을 잡았고,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칭했다. 당시 소련은 제 3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건재했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여전히 세계 전역에서 대립하는 사상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레닌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사상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커다란 파급효과를 미칠 만한 이데올로기 논쟁이 거의 없는 시대이다. [그 날 이후]와 같은 영화가 제작될 가능성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토론도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슬람 테러가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어서 9.11 사태 이후 잠시 토론의 불길을 당겼지만, 그 영향이 제한적인 데다 비이슬람 국가까지 끌어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지하드 전사들이 테러를 감행하려면 자신들의 강력한 신앙심으로 소수의 극단주의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지하드 전사들은 위협을 가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위협이 아니다. 워싱턴에서 여러 당파가 시끄럽게 다투지만 일반적인 정치적 의견의 차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러 쟁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30~40년 전에 비하면 훨씬 가까워진 편이다. 따라서 젊은 세대도 이데올로기의 경쟁에 휘말리지 않는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본주의자이지만 사회적으로 진보를 표방하며 사회복지를 지지한다. 그러나 관료주의와 규제에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이런 줄충주의는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정치 철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따라서 학생들은 바리케이드 뒤로 끌어내지도 못한다.

 (중략) 달리 말하면, 원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밤늦게까지 치열하게 난상토론을 벌이며, 학생 토론회와 정치 집회에서 목소리를 높여 웅변할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뜼이다. 지금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세계이다. 젊은이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다.

 (중략)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기업가이자 사업가인 빌 게이츠는 이 시대의 미국에서 존경받는 영웅 중 한 명이다. 게이츠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아주 똑똑하며, 성과지향적이지만 겉보기에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면모는 대체로 주변과 후세에 전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다. 게이츠는 과학부터 경제학 및 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의 연셜과 블로그 게시물은 책에 대한 이야기, 즉 책에 대한 논쟁과 분석 및 그에 대한 자료들로 가득하다. 공부벌레 같은 이런 방식이 철학을 학습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게이츠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중요한 사상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중략) 게이츠와 버핏은 확고한 신념에서 원대한 사상과 가치에 감동을 받아 대담하고 중요한 행동을 취한 사람들의 표본이다. 달리 말하면, 삶의 철학에 입각해서 그 철학을 헌신적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요컨대 게이츠와 버핏은 과거에 당당한 목소리로 선과 악, 명예와 희생에 대해 연설한 정치인이나 장군만큼이나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두가 게이츠나 버핏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요즘 대학생들은 과거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도덕성과 삶의 의미를 추구할 뿐이다. 그들도 과거의 새로운 세대들, 특히 급격한 변화를 겪던 시대의 새로운 세대만큼이나 도덕성과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 과거에 비해서 요즘 대학생들은 더 점진적이고 실용적일 뿐이다. 그들도 진실을 추구하지만, 과거처럼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조용한 방법을 택한 것일 뿐이다. 요즘 젊은이는 자신의 욕구와 올바른 삶을 조화 있게 결합하려고 애쓰는 게 다르다.

 (중략) 그러나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부양하려는 노력이 정말 삭막하고 영혼 없는 것일까? 자유민주주의적 프로젝트가 이루어낸 성과 중 하나라면, 혁명과 전쟁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각자가 의미와 성취감과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언젠가 읽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여성 판사에 대한 기사가 기억난다. 그 판사는 미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장 큰 관심사 - 아파르트헤이트의 붕괴와 새로운 국가의 탄생 -를 미국 신문에 실린 사소한 사건들에 비교하며, 언젠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모든 신문이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기사로 가득 채워질 정도로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불평등과 불균형 등 국내외적으로 바로잡아야 하고 개혁되어야 할 많은 문젯거리가 잇따.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이 운좋게 개인적인 미덕을 함양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미국독립전쟁이 한창이던 때 존 애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정치와 전쟁을 공부해야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마음놓고 수학과 철학을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들은 수학과 철학, 지리와 자연사, 조선공학과 항해, 산업과 농업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자식 세대는 회화와 시, 음악과 건축, 조각, 태피스트리와 도자기를 공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덕분에 오늘날 미국인들은 시를 공부하는 대신 애플리케이션을 만지작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것도 시대의 적응이다.

- 201~210p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성격을 띤 듯한 이런 학문들이 하나로 버무려질 때 뜻밖의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지, 창의성은 따로 공부한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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